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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자료사진).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자료사진).
ⓒ 황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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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4일 청와대는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단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가정보원 2차장,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대북특별사절단을 구성했다고 발표하고 바로 내일(5일) 북한으로 파견하기로 했다. 장관급을 2명이나 포함시킨 중량급 사절단이면서도 일정은 1박2일로 단출하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번 특사단에 대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라는 투트랙 판을 짜기 위해 정의용 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같이 가야 한다"면서 "전체적으로 눈 감고도 골목길을 잘 찾아갈 전문가들로 진용이 잘 짜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사단과 북측의 회담 내용에 대해서는 "북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요구를 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이렇게 짧은 일정으로 급하게 가는 것은 짐작컨대 한미훈련에 대해 뭔가 복안을 갖고 가는 게 아닌가 한다"고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또 특사단이 평양에 갔다 와서 바로 미국으로 간다는 점이 북에게는 매력이어서 대북 협상에서 유리한 카드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조금만 태도를 완화시켜주면 우리가 그걸 갖고 미국을 움직일 테니까 그동안 했던 얘기를 좀 바꾸라"고 북을 설득할 수 있는 포인트라는 얘기다.

다음은 4일 오후 정세현 전 장관과 한 전화인터뷰 문답 전문.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로 서훈 국가정보원장(오른쪽)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확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로 서훈 국가정보원장(오른쪽)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확정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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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용 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 등 장관급 2명이 함께 가는 특사는 우리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것 같다.
"대북 특사로는 처음이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라는 투트랙 판을 짜기 위해 두 분이 같이 가야 한다. 남북정상회담 전에 북미대화를 성사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미국과 쭉 얘기를 해 와서 미국 의중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할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순서상 지금은 북미관계가 우선이다. 정의용 실장이 들어간 것이 특사 파견에 목적에 맞는 인적구성이라고 본다.

서훈 원장은 이전 2번의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일을 했기 때문에 이후 남북관계 개선과 정상회담까지 여러 문제를 협의하려면 가야 한다. 또 서 원장이 폼페이오 미국 CIA국장하고 밀접하다니까 북미대화 문제와 관련해 정 실장을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조직체계상 같은 급이면 청와대가 선임이다. 또 지금은 북미 대화를 끌어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정 실장이 단장을 맡았을 것이다.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정 실장이 서 원장의 서울고 8년 선배이기도 하다."

- 청와대는 "한반도 비핵화 위한 북미대화 여건 조성과 남북교류 활성화 등 남북관계개선문제에 대한 포괄적 논의"라고 특사단의 임무를 설명했더라.
"'북미대화 여건 조성'이 정 실장이 맡아야 할 몫이고, '남북관계 개선'을 서훈 원장이 담당한다는 얘기 아닌가. 남북관계 부분은 통일부 장관이 해도 되는 일이지만, 서훈 원장이 금년 초부터 이면에서 북과 연락을 해왔고, 상대역인 김영철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왔었기 때문에 그가 가는 것으로 본다."

- 특사단에 조언을 한다면.
"눈 감고도 골목길을 잘 찾아갈 전문가들로 진용이 잘 짜졌다. 서훈 원장은 북한이 '쩝'만 해도 무슨 뜻인지 알고, 정 실장은 미국이 눈만 찔끔해도 읽어낸다. 특사단에 서훈 원장을 비롯해 천해성 차관, 김상균 2차장 등 북한을 잘 아는 사람이 세 명이나 있다. 여기에 대고 내가 당부할 얘기가 없다(웃음).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오길 바랄 뿐이다.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은 대통령 입장에서 전체 상황을 파악하려 포함됐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대통령 측근들이 포진했기 때문에 대통령 뜻을 잘 전달할 것이다."

- 특사단이 방북해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게 될 텐데, 어떤 논의를 하게 될까. 
"지금은 비핵화를 위한 회담 입구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특사단이 북에게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 이런 얘기는 당분간이라도 접어라,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는 않겠다는 명언적 약속을 하라고 하지 않겠나. 그러면 북에서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은 어떻게 되는 거냐, 중단 약속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상호주의로 하자고 나올 거다.

어제(3일) 북한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미훈련을 강행하면 우리 식의 대응 방식으로 미국을 다스릴 것'이라고 했는데, 이게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 발사하겠다는 것 아닌가.
이처럼 북한이 한미군사훈련 얘기를 할 게 뻔한 상황에서 이렇게 짧은 일정으로 급하게 가는 것은, 짐작컨대 한미훈련에 대해 뭔가 복안을 갖고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짧은 일정? 성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일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남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오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 김여정과 밝은표정으로 대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남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오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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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에 갔다가 6일 오후에 오는 1박 2일 일정이면 짧기는 짧은 것 같다.
"북에서는 김여정 특사나 김영철 부위원장이 2박 3일 일정으로 왔다. 그에 비하면 짧고 또 예상보다 급하게 가는 건데, 어느 정도 북한이 만족할 만한 카드를 들고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추정이 든다. 그래서 짧은 일정이 나쁘지 않다고 본다. 짧게 가도 성과를 낼 자신이 있으니까 이렇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

-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의 동생인 김여정을 특사로 보내면서 당연히 남측에서 답방 특사가 올 거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미국에게 문턱을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미국이 문턱을 유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북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데, 한미간에 얘기가 돼서 북이 조금만 신호를 보내주면 미국이 문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으로 얘기를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번에 특사가 가서 '우리가 미국과 계속 얘기를 해 봤는데, 북이 조금만 태도를 누그러뜨리면 미국도 조건을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또 바로 미국으로 간다, 그러니 우리에게 미국을 설득할 카드를 달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특사단이 바로 미국으로 간다고 하는 사실이 북에게는 매력이고, 대북 협상에서 유리한 카드가 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조금만 태도를 완화시켜 주면 우리가 그걸 갖고 미국을 움직일 테니까 그동안 했던 얘기를 좀 바꾸라고 얘기할 수 있을 거다."

- 이낙연 국무총리나 박지원 의원 등은 대통령 특사가 북한보다 미국에 먼저 가야 한다고 주장했었는데.
"나도 미국이 워낙 완강하기 때문에 먼저 미국에 가서 좀 흔들어야 한다고 봤다. 미국이 조금만이라도 문턱을 낮추도록 해서 그걸 갖고 대북특사를 보내서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1일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내가 먼저 움직일 생각은 없으니 북한을 흔들어 보라'고 한 게 아닌가 싶다. 양 정상 통화 뒤에 청와대는 그 말을 안했는데 미국 백악관은 '양국 정상은 북한과의 어떤 대화도 CVID라는 분명하고 확고한 목표(explicit and unwavering goal)를 갖고 진행돼야만 한다는 굳건한(firm) 입장을 확인했다'고 'CVID'를 꺼냈다.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아들 부시 대통령 때 네오콘인 딕 체니 부통령 작품 아닌가. 오바마 대통령 때도 CV까지만 하고 I는 꺼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트럼프가 이걸 다시 전면에 꺼내든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가 미국은 완강하기 때문에 먼저 북한의 문턱을 낮춰야겠다고 생각하고 대북 특사를 먼저 보내는 것 같다."

"북 비핵화 표명 없이 남북정상회담 안 된다? 무지한 주장"

- 북한의 비핵화 의사 표명이 없는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은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북이 노골적으로 비핵화를 하겠다는 그런 얘기를 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 비핵화로 갈 수 있는 첫단추라 할 수 있는 북미대화가 시작이 됐다면 남북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 이건 그동안 '비핵화를 끌어낼 수 없다면 북한과 대화를 않겠다'는 미국이 대화에 나선 것이기 때문에, 미국도 최종적으로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본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 문제 해결 못한다. 비핵화 대가로 북에 줘야 할 것 중에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없다. 북미수교나 평화협정은 우리가 미국에 그렇게 하자고 부탁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사안 아닌가. 그런 주장은 북핵 문제의 뿌리나 전개 과정에 아주 무지한 얘기다."

-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김여정 특사와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만났을 때 어떤 대화를 나눴나. 김영남 위원장과는 구면이기도 한데.
"(11일 이낙연 총리 주최 오찬장에서 만났을 때) 김여정 특사는 빙긋이 웃기만 하고 말을 잘 않더라. 김여정 특사와 같은 테이블에 있던 임동원 전 장관도 별로 말수가 없다고 얘기하더라. 내가 악수하면서 "사진에서 본 것보다 키가 크시네요"라고 말을 붙여 봤는데 빙긋이 웃기만 했다. 아무래도 남측에 와서, 북한 말로 '말밥(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려고 절제하고 조심했겠지. 김영남 위원장에게는 '손녀가 할아버지 대하듯' 웃고 그러더라.

김영남 위원장은 2002년, 2005년에 이어 세 번째 만났다. 9일 평창 올림픽 개막식 직전 리셉션에서 만나서 내가 '건강하시네요'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웃기는 하는데 얼굴은 벌게져 있었다. 펜스 미국 부통령이 다른 정상들과는 인사 나누면서도 자기하고는 악수도 않고 외면하고 가버렸으니 얼마나 무안했겠나. 총리 주최 오찬 때는 먼저 다가와서 말도 걸고 한잔하자고 건배 제안도 하더라."


태그:#문재인,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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