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접시 위 고기 한 점… 그 동물은 어떤 삶 살았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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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든 여자/캐머스 데이비스 지음·황성원 옮김/448쪽·1만8000원·메디치

사진 출처 포틀랜드 고기 공동체 홈페이지
사진 출처 포틀랜드 고기 공동체 홈페이지
진짜가 되고 싶었다. 매일같이 ‘진짜’에 대한 글을 쓰던 저자였다. 10년간 잡지사 기자이자 편집자로 음식 분야 취재와 레스토랑 평론 등을 담당한 저자는 일을 할수록 오히려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괴로워했다. 접시 위에 올라온 스테이크와 가장 가까운 일을 하면서도 정작 무슨 부위인지, 그 동물은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죽었는지 등에 대해 알지 못하는 답답함이었다.

마침 절묘한 타이밍이 다가왔다. 10년간 몸담은 직장에서 상사와의 불화로 해고당했고, 평생을 함께할 줄 알았던 연인과도 이별했다. 우연히 거의 사용하지 않던 신용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 남서부의 시골마을 가스코뉴행 비행기 표를 구입하고, 고민 없이 떠났다. 가스코뉴의 한 도축장에 도착한 저자는 펜 대신 칼을 집어 든다. 이후 저자는 음식과 고기, 육식의 본질을 확인하는 진짜배기 도축사로 변신해 간다.

프랑스에서 동물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도축 방법을 경험한 저자는 육식에 대해 “산업화가 우리의 식품 시스템을 점령한 이후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게 된 지식과 기술, 감각을 다시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굿미트 프로젝트에서 고기 강의를 하는 모습. 사진 출처 cooking up a story 사이트
프랑스에서 동물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도축 방법을 경험한 저자는 육식에 대해 “산업화가 우리의 식품 시스템을 점령한 이후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게 된 지식과 기술, 감각을 다시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굿미트 프로젝트에서 고기 강의를 하는 모습. 사진 출처 cooking up a story 사이트
제목처럼 도축장에서 칼을 들고 있는 저자의 여정을 담아낸 책이다. 잡지사를 그만두며 글 쓰는 일은 다신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섬세하고 날카로운 필력이 곳곳에 묻어나온다. 단순히 육식과 채식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가 아닌 “책임감 있는 육식 소비”라는 대안을 저자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가스코뉴 농가에서는 동물을 대하는 특별한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진정성이다. 대부분의 농장에서 곡물을 직접 재배해 사료를 만들고, 동물의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도축사가 직접 관여한다.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동물을 철저히 분업화된 방식으로 해체하는 공장식 도축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특히 동물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곳곳에 녹아 있었다. 프랑스 등은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기 전까지 의식을 유지하는 동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사전에 반드시 전기 충격으로 기절시키는 등 단순히 먹기 위한 존재가 아닌 함께 생활한 존재로서 동물에게 예의를 다하는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프랑스에서 배운 도축과 정형 등을 소개하는 ‘포틀랜드 고기 공동체’를 설립한다. 육식 비율이 높으면서도 도축업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강하고, 고기를 만들어낸 죽음을 연상시키는 문화를 금기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과감한 시도였다. 지역사회에서는 “노골적이고 폭력적이다” “비양심적이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저자는 햄 한 조각조차 어떻게 접시 위에 올라오게 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알리겠다는 각오를 유지한다. 결국 저자의 뜻에 동참한 이들이 늘어났고, 2014년부터는 미국 전역으로 프로그램을 확대한 ‘굿미트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새로운 육식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육식과 도축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책 전반에는 삶의 확실성과 정직함을 찾기 위한 저자의 용기와 집념이 곳곳에 배어 있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인문학 강연을 듣거나 유기농 음식을 찾는 것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지만 정작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진지한 노력과 경험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 신선한 통찰을 제공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칼을 든 여자#캐머스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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